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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학기 장칠성 장로 '장학금 전달식' 가져
작성자 대외협력모금팀 등록일 2017-03-10 14:03:14 조회수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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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뉴스]

 

2017-1학기 장칠성 장로 '장학금 전달식' 가져

 

2009년부터 열다섯 차례 장학금 기부해

 

목회자 양성을 위한 고 장칠성 장로 유지 이어받아 부인 정선순 권사와 자녀 기꺼이 동참

 

 

 정선순 권사()가 최성일 총장(직무대행)()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우리 대학은 지난 310() 오전 1130분 총장실에서 장칠성 장로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신천중앙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시무했던 장칠성 장로는 평소 목회자 양성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이 같은 남편의 뜻을 이어받아 부인인 정선순 권사와 장진수심은경 집사(아들내외)20098월부터 매학기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이번이 열여섯 번째 전달식으로 정선순 권사는 우리 대학에 850만 원을 기부했다. 그동안 기부한 장학금은 총 24천만에 이른다. 장학금은 학부생 3명에게 250만 원을 대학원생 1명에게 100만 원을 각각 전달할 예정이다.

 

정선순 권사는 "비록 작은 금액이지만 어려운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좋은 목회자와 인재가 양성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성일 총장(직무대행)은 유년 시절 서울에서 경험담을 함께 나누면서 "매 학기 귀중한 장학금을 기부해주셔서 감사하다""장학금 수혜학생에게 기부자의 뜻이 잘 전달되고 훌륭한 한신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장칠성장로 장학금 전달식 참석자들이 기념촬영를 하고 있다.

 


 


아래는 최근 한신소식 77호를 통해 소개된 정선순 권사의 훈훈한 기부 스토리이다 

목동에 있는 정선순 권사 집으로 향했다. 기부자들을 인터뷰 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은 보통의 우리와 다른 가치관과 세상을 향한 깊은 애정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모든 삶의 영역마다 그런 이들이 있고, 그런 이들이 도드라져 보이는 건 너무나 당연할 일이다.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들에게서 비춰 나오는 아주 특별한 삶의 태도와 마주 설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걸 경험하고는 한다. 한신대학교에 장칠성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는 정선순 권사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

 

사연은 어떤 사연으로부터 시작되고

장칠성이란 이름이 가장 궁금했다. 누구냐고 물었다. 그녀의 평생 반려였던 사람, 남편이었다. 지금은 신의 품에 안겼지만 여전히 남편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액자 속 사진과 상장들 속에 그는 아직도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9주기를 맞았고, 한신대에 장칠성장학금을 기부한 것도 어느덧 8년이 되었다. 어째서 그녀는 남편 이름으로 장학금을 기부하는 것일까? 그 사연을 듣기 위해 지나온 그들의 시간과 삶의 내력을 더듬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 그녀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젊은 날, 그들 부부는 가난했다. 정말이지 찢어지게 가난해서 삶이 고단하던 시절이었다. 시집을 와서 보니 집안에 십 원짜리 하나도 없을 만큼 가난한 살림살이였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그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신앙심이었다. 외조모께서 살아계실 적에 누군가에게 쫓기는 신부를 감춰줬던 일, 그것이 운명처럼 신과 맺어진 인연이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어머니, 그녀 그리고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로 이어지며 하나같이 신의 자식으로 살고 있다.

 

삶은 팍팍했다. 아이스께끼 장사부터 노점까지 손대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 꽤나했다. 힘들어도 부부는 정직과 성실이라는 삶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좋게 보았던 황해도 출신인 사장 한 분이 부부에게 거금의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 염천교 근처에 가게를 얻어줬다. 다른 건 하나도 보지 않고 사람 됨됨이만 보고 이자나 갚으라던 귀인 덕에 제대로 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고달팠지만 신나게 일하던 시절이었다. 장사는 점점 흥이 났다. 그렇게 커져서 수출과 수입을 할 정도로 제법 규모를 갖춘 회사로 키웠다.

 

고단한 시절에도 누군가를 살피던 그 마음

혹독한 시절에도 그들은 어려운 이들을 지나칠 수 없었다. 벌어들인 것에서 조금씩 떼어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나 노인들을 도왔고, 살림이 어려운 보육원에 꼬박꼬박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그들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살았다. 도와서 뭘 어쩌겠다는 욕심 따위는 없었다.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고 그 마음에 따랐을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남편 몰래 한 달에 한 번씩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실로암안과병원에서 전개하고 있는 사랑의 무료 안과진료를 통한 실명예방과 개안수술 사업에 기부를 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도우며 살라는 성경 말씀을 따랐다. 결코 깨져서는 안 되는 소명을 받들 듯이 귀하게 지켰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세상에 도움을 나눈 것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사업도 승승장구했고, 하나뿐인 아들도 깡패들 득시글거리는 험한 염천교에서 학교를 다니며 무탈하게 잘 자랐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가진 것을 나누었다. 돌이켜 보면 그 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만 같다.

 

세상을 돕겠다던 남편의 마지막 유지를 받들다

그런 정직과 신의로 살았던 그들에게 시련이 닥쳤다. 1991년 남편이 위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수술을 받고 통원 치료를 계속 했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2007년 여름, 또다시 입원한 남편은 2008년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녀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꼈다. 방 한 칸도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부모님을 모시며 살았던 시절이, 고되지만 가게를 조금씩 늘리며 살림살이를 키우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전,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했던 말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자신이 병을 고쳐서 병원을 나가게 되면 그녀처럼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말. 모르게 한다고 한 나눔을 남편이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무척 놀랐다. 평소에 어려운 이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던 남편의 마지막 뜻을 자신이 이뤄주고 싶었다. 어떤 식으로 세상에 나눔을 할까 고민하던 그녀는 남편이 10년간 장로를 지냈던 신천중앙교회 목사와 방법을 상의했다. 목회자를 키우는 한신대학교에 장학금을 기부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여 남편의 이름인 장칠성으로 장학금을 매년 전달하게 되었다.

    

돕고 나면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한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요. 어쩌면 나 행복하자고 하는일인지도 몰라요. 죽을 때까지 이 일은 계속해야죠. 남편이 내게 먹고 살 만큼 벌어놓고 가셨으니 장칠성장학금을 끝까지 지켜줘야죠. 그 사람과 말로 약속한 건 아니지만 부부에게도 신의란 게 있으니까.”

 

목회자의 길을 걸으려는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 작지만 힘을 보태고 싶었던 이유가 그녀에게 있다. 그들이 목회자가 되어 세상에 나가서 밝은 등불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교회 하나가 파출소 열 개 늘어나는 것보다 더 났다고 믿는 까닭이다. 더불어 한신대 학생들에게 믿음정직을 잃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녀 자신도 하나님과의 믿음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았기에 고된 삶도 버텨낼 수 있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으로 가득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니 자서전 한 권을 쓰고도 넘칠 것 같다. 제 삶에 신의를 다해 산 한 사람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훌륭하다. 오래된 와인처럼 놀라운 향기를 내뿜는 걸 보면 말이다더불어가는 실천지성, 한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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